연예 [강시언의 공연산책] 연극 '테베랜드', 아버지를 죽인 아들들의 땅, 그곳에 서린 비극에 관하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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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원형 무대 가운데에 놓인 네모난 철창, 그리고 그 위를 수놓은 CCTV 화면들. 갑갑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무대를 배경으로 묘하게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연극의 무대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노래에 푹 빠져있을 때쯤, 평온한 멜로디를 파괴하는 강렬한 소음이 극장을 메운다. 철창 안에 갇힌 남자, 마르틴의 손에 들린 농구공이 내는 마찰음이다. 마르틴의 지휘에 따라 때론 가볍고 경쾌하게, 때론 강하고 묵직하게 바닥을 때리는 공 소리는 비극의 서막을 알리는 북소리처럼 혈관을 타고 울린다.
![사진 = MHN스포츠 강시언 / [리뷰] 연극 '테베랜드', 아버지를 죽인 아들들의 땅, 그곳에 서린 비극에 관하여](https://cdn.mhnse.com/news/photo/202412/356782_415146_3214.jpg)
아버지를 죽인 존속 살해범, 마르틴을 찾아온 극작가 'S'. 존속 살해를 주제로 한 연극 프로젝트를 구상한 그는 단순히 존속 살해 스토리를 무대에 올리는 것을 넘어 실제 살해범을 무대에 출연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연극 무대 위에 철창을 설치하는 조건 하에 마르틴이 직접 출연하기로 하지만, 안전 문제로 인한 반대 의견이 제기되며 그의 출연은 무산되는데... 그를 대신할 연기자 '페데리코'가 섭외되고, S는 마르틴, 그리고 페데리코와 이야기를 나누며 존속 살해에 대한 모호성, 그 본질에 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에 대한 거대한 혼란 속에 S의 연극은 무대에 오르는데...
존속 살해. 연극 '테베랜드'는 말만 들어도 오금이 저려오는 이 끔찍한 범죄를 다양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범죄자를 영웅처럼 떠받들지도, 범죄자의 악함을 들춰내며 신랄하게 비난하지도, 그의 아픈 과거를 회상하며 동정심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그저 존속 살해, 그 단어에 얽힌 근본적인 물음과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라는 존재에 관한 본질을 끊임없이 파고들 뿐이다. 단순히 자식을 낳았다고 하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들은 단순히 아버지에 의해 태어났다고 하여 아버지를 사랑해야 하는가?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존재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존속 살해범이라 불리는 것이 옳은가? 아버지는, 아들은 어떤 존재이며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가? 하는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사진 = MHN스포츠 강시언 / [리뷰] 연극 '테베랜드', 아버지를 죽인 아들들의 땅, 그곳에 서린 비극에 관하여](https://cdn.mhnse.com/news/photo/202412/356782_415145_3213.jpg)
이 근본적인 물음들은 오이디푸스라는 인물의 비극적인 신화로부터 비롯된다. 존속 살해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그의 이름은 언젠가 읽었던 그리스 로마신화 속 페이지 어딘가에서 소환되어 무대로 끌려온다. 그리고 무대 위 철창에 갇힌 마르틴과 조우한다. 두 존속 살해범의 이야기는 겹쳐지고 재정립되며 과거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온 존속 살해의 역사, 그곳에 뿌리를 내린 비극의 씨앗을 파헤친다.
오이디푸스는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국을 차지한 뒤 어머니와 결혼한, 잔혹한 범죄자의 표상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으니, 그것은 그가 아버지를 살해할 때 그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며, 어머니와 결혼할 때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이디푸스를 과연 완전한 존속 살해범으로 볼 수 있을까? 자신이 살해한 대상이 자신의 아버지인 줄도 몰랐던 오이디푸스에게 존속 살해범이라는 낙인을 찍을 것인지, 운명의 피해자라는 면죄부를 줄 것인지는 분명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그리고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문답이 있다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아들의 목숨을 빼앗으려 한 오이디푸스의 아버지를 과연 그의 '아버지'라고 정의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연극은 이렇게 존속 살해에 관련된 문제들을 가감 없이 들춰내고 현실을 꼬집으며 점점 더 깊은 심연으로 파고든다.
![사진 = MHN스포츠 강시언 / [리뷰] 연극 '테베랜드', 아버지를 죽인 아들들의 땅, 그곳에 서린 비극에 관하여](https://cdn.mhnse.com/news/photo/202412/356782_415143_3212.jpg)
연극 '테베랜드'는 비교적 절제되고 담담한 어투로 이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주제의 잔혹성을 고려할 때, 감정적인 부분을 꽤 덜어낸 듯한 깔끔한 방식이다. 이런 태도는 관객들로 하여금 연극의 인물보다는 주제와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게끔 한다. '인물' 자체보다 '인물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흐름은 인물 간의 대화가 중심이 되는 2인극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만큼 신선한 인상을 준다. 한 명의 사람, 하나의 사건이 아닌 그보다 더 깊은 어딘가를 바라보는 '테베랜드'의 시선은 인간의 본질적 욕망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16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흥미진진하게 끌어간다.
두 명의 인물이 나누는 대화로 극이 진행되는 만큼 모든 장면은 엄청난 양의 텍스트로 빼곡히 채워진다. 그야말로 텍스트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S는 마르틴의 이야기를 듣고 극을 써 나가는 과정에서 존속 살해에 관한 수많은 관점을 제시한다. 예술과 사회, 철학을 넘나드는 예리한 질문들은 무대를 순식간에 지적인 고뇌의 장으로 만든다. 관객들은 그곳에서 한 명의 논객이 되어 무대 위 인물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묻고, 답하며 치열하게 답을 얻기 위한 논쟁을 펼친다. 제법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연극의 시선과 별개로 무대의 온도는 불타오르도록 뜨겁다. 존속 살해의 뿌리를 찾기 위한 문답이 쉴 틈 없이 마찰을 일으키며 극장을, 관객의 머릿속을 헤집어놓기 때문이리라.
CCTV를 활용한 영리한 연출은 이들의 이야기를 바라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관객들은 연극의 관객, 사건의 목격자, 혹은 그저 제3의 인물이 되어 CCTV 화면 속 S와 마르틴의 모습을 응시한다. 이러한 구조는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공고히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느낌도 준다. 관객들은 CCTV를 통해 이들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럼으로써 인물들의 거리와 감정,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의미를 더 깊게 고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화면을 통해 마르틴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부분에서는 마치 그의 무의식에 발을 들인 듯한 신선한 감각을 체험할 수 있다. 이런 독특한 구조의 연출은 연극 '테베랜드'의 주제성을 더욱 부각시키며 작품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킨다.
![사진 = MHN스포츠 강시언 / [리뷰] 연극 '테베랜드', 아버지를 죽인 아들들의 땅, 그곳에 서린 비극에 관하여](https://cdn.mhnse.com/news/photo/202412/356782_415144_3213.jpg)
연극의 주축이 되는 두 명의 인물, S와 마르틴을 연기하는 이석준, 강승호 두 배우의 역량은 혀를 내두를 만큼 훌륭하다. 어떤 단어들을 나열해야 이들의 뛰어난 연기에 대한 감상을 다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다. 누군가를 연기하는 '배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S', '마르틴', 그리고 '페데리코', 그저 그 인물들 자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연극을 보는 내내 완전히 매료되었고,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테베랜드', 그 척박한 땅으로 관객을 이끄는 두 배우의 모습은 완벽을 넘어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수준의 감동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오랜만에 모든 진심을 가득 담아 기립박수를 건넸다. 살면서 또 이렇게 배우들의 연기 자체에 감탄을 하게 될 날이 올까, 생각할 정도로 감동적인 무대였다. 이 글을 빌어 엄청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해 준 두 배우와 연출진, 창작진 모두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다시 한번 건네고 싶다.
연극 '테베랜드'는 존속 살해에 관련된 모호성을 조명하며 그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이다. 잔혹하지만 반드시 마주해야 할 현실, 그 신화적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면 '테베랜드',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그 비극의 땅으로 발을 디뎌 보기를 바란다. 메마른 모랫바닥을 수놓은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과 핏자국에서 지금껏 찾아 헤맸던 본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한편 연극 '테베랜드'는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오는 2025년 2월 9일까지 공연된다.
글: 강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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